너덜너덜한 서적들을 뒤지는 손길이 다급했다. 대부분은 60년대에 출간된 민속학 책이다. 낡아버린 얇은 책장을 걱정할 새도 없이 거칠게 넘기고 넘겼다.

이미 다 알고있는 것들이었다. 귀신, 요괴, 토착전승……. 그러나 모든 것을 다시 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위령굿, 제령의식, 강령……. 그런 것들과 방법은 이미 대부분 외우고 있었지만 이번에 잘 살펴봐야 할 것은 더 근본적인 것들이다. 죽은 자의 혼과 넋, 그리고 백, 윤회의 규율, 그런 개념 단위의 것들.

그러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대목이 있었다. 전설 속 괴물과 괴이, 토착 요괴등이었다. 사람이 죽어 된 귀신과 그 소분류와는 다르게 처음부터 사람이었던 적이 없는 존재들이다. 즉, 사람에서 출발한 귀신들과는 전혀 다른 뿌리를 지녔기에 전혀 다른 대응이 필요한 존재들이었다.

책 위로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거슬렸다.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그녀는 머리끈을 가지러 가지 않았다. 책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놀라운 속도로 독파해나갔다. 더욱 더 서두르지 않으면 안됐다.

신이 노했다. 주상전하의 호출이다.

주상은 그녀와 접촉할 장소로 그녀의 신당을 택했다. 이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신역의 궁궐로 불려갈 줄만 알고 정장만 차려입은 게 무색하게도 무질서하게 쌓인 서적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그녀의 거처에 신을 들여야 했다.

그 이유라면 짐작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눈앞에 둔 이 재액신은 그의 아버지를 끔찍이도 아꼈다. 그가 악신으로써 성립하는 이유도 그것이고 그가 가진 신화도 그것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 이 대화를 그의 아버지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것일테다.

남설우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남설우에게서의 연락이 끊긴지 보름이 되는 시점에 확인되었다. 그를 만나러 나간 혁산대원군이 최초 발견자였다. 그 날 대원군은 공포에 질려 주상에게로 달려오더니 횡설수설하며 말을 쏟아냈다. 그리하여 금수의 광왕은 본인이 직접 고용한 인간 사자의 죽음을 인지하였다. 그래서 바로 먼저 한 행동이 그녀에게 연락을 취하는 것이었다. 주상의 명으로 남설우와 2인 1조로 짝을 지어 임무를 수행했던 버려진 무당, 연민정이 가장 중요한 증언자였다.

민정은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당연히 왕이 진노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죽음조차 각오하고 있었다. 인간의 생명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성질에다 퇴마는 위령이고 성불이고 관심도 없이 귀신을 씹어삼켜버리는 것으로 간단히 처리해 버리는 성미다. 문답무용으로 갈가리 찢어버릴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에게서 분노의 기색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그녀의 신당을 둘러보고 있었다. 책임을 물으려 온 지배자보다는 그저 심심해서 적당히 어슬렁거리는 대학생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러다 그가 대뜸 물었다.

“뭐 신경쓰이는 거 없었고? 아, 잠적한 건 알고 있다. 아바마마께서 걱정하셨으니.”

그녀는 스스로 볼품없이 화들짝 놀란 것이 티가 났을까 신경쓰였다. 그러나 최대한 침착하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간단한 위령이 통할 것 같은 상대는 아니라는 것 정도입니다. 연락이 끊긴 건 대원군 저하와 비슷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남설우 스스로 자해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관계가 있어보입니다.”

“흐음.”

왕이 관심을 보이는 듯 민정을 바라봤다.

“아바마마가 말씀하시던 그건가. 더 자세히 말해봐라.”

“예. 남설우는 자신에 몸에 강령을 하고싶어하거나 자신의 몸을 미끼로 쓰는 작전을 유독 적극적으로 쓰고싶어했습니다. 죽고 싶어서 그런 건지 귀신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지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습니다.”